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전쟁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독교-이슬람교 갈등 ==== [[크로아티아]]는 1102년 [[헝가리 왕국]] 국왕 [[칼만]]이 [[크로아트 왕국]] 왕위를 계승한 이래 헝가리와 [[동군연합]]을 이루었고, [[슬로베니아]]는 14세기 중반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공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원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가 [[보헤미아 왕국]] 국왕 [[오타카르 2세]]를 무찌르고 [[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케른텐 공국]], [[카르니올라 공국|크라인 변경백국]]을 회수했는데 루돌프 1세는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는 맏아들 [[알브레히트 1세|알브레히트]]에게 넘겨주었고 케른텐과 크라인은 후손들이 단절되면 반환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티롤 백작 마인하르트 2세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마인하르트 2세의 후손들이 1338년을 끝으로 단절되면서 당시 오스트리아 공작이었던 [[루돌프 4세]]가 회수했고 크라인 변경백국을 크라인 공국으로 격상시켰다.] 이후 14세기부터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일부를 제외한 지역 전체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실 민족적 갈등의 뿌리는 오스만 제국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고, 가톨릭-정교회가 갈라진 동서방 기독교 분열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오스만 이전의 가톨릭-정교회 갈등은 크지 않았던데 반해 오스만 제국 시절 때 종교적 갈등이 고착화되었고, 오스만이 이런 종교적 갈등을 이용하여 이교도 피지배계층인 남슬라브족을 교묘하게 분리 지배했다. 여기에 남슬라브족 일부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들은 이슬람교가 우선인 오스만 제국 내에서 우대를 받고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민족 갈등을 더더욱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었다. 오스만 시절 이 지역의 민족 갈등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크로아티아인]]이나 [[보슈냐크인]]이나 [[세르비아인]]이나 서로의 종교 축일에 서로를 방문해 축하하며 함께 축제음식을 나누고 각 민족간의 [[통혼]]도 매우 활발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발칸 지역에서는 종교에 대해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험 삼아-- 두세 개씩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매우 흔했다. 중세 기독교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유럽에서 최초로 대규모이단 사냥과 서방기독교 세계 내부의 종교 전쟁, 학살이라 할 만한 [[알비 십자군]]의 [[카타리파]] 또한 원래 보스니아 지방의 [[보고밀파]]에서 전파된 것이 정설로 통할 만큼 발칸 반도, 특히 몬테네그로-보스니아 산악 지대는 애초에 강력한 정복 제국들의 행정력이 닿지 않아 종교적으로 굉장히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이혼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회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로아티아 여성이 이슬람으로 (형식적으로) 개종하고 남편이 이교도라는 이유로 이슬람 법정을 찾아가 이혼판결을 받아내는 사례를 비롯해, 오스만 제국이 비무슬림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거부하기 위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무슬림]]이다!"라며 관리들을 쫓아냈다. 그러자 "그렇다면 당신들은 무슬림이니 군대를 가라!"라며 다시 징집관을 보내오자 "우리는 기독교인이다! 니들 행정문서 잘못된 거 아니냐?"하고 거부하는 알바니아 마을 이야기도 그렇고 민족주의 대두 이전의 이 지역 사람들은 가톨릭과 정교회와 이슬람을 필요에 따라 나름대로 잘 써먹고 있었다. 정교회의 성인인 성 일리아스 아르두니스(Άγιος Ηλίας ο Αρδούνης)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젊은 시절에는 세금 좀 덜 내겠다는 요량으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으로 (형식적으로) 개종했다가, [[아토스]]산을 여행하고 나서 그곳에서 신성한 체험을 하고 [[수도자|수도생활]]을 8년 동안 하고 고향인 [[칼라마타]]로 돌아온 그에게 시장에서 한 튀르크 군인이, "이보게 무스타파(일리아스의 무슬림 이름), 자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다 왔는가?"라고 묻자, "나는 더이상 무슬림 무스타파가 아니라 정교인 일리아스라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도시의 관리들이 그를 배교혐의로 고발해 [[화형]]에 처했는데 화형대의 불길에도 불구하고 전혀 몸이 타지 않아 결국 [[참수형]]에 처해졌고, 죽은 일리아스의 몸이 밤이 되도록 밝게 빛나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슬람에서 다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당시엔 워낙 이슬람인 척 하는 기독교인이 너무 많아서 신성시된 경우다. 위의 일화에서 보듯이 편의에 따라 종교를 갖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화형으로 끝나는 것에서 보듯이 종교갈등이나 반목이 없는 것은 아니였고 이교도에 대한 정책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오스만 제국은 정복한 지역에 대해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우대 정책을 펼치고 그에 따라 편의를 위해 이전에 이 지역에서 이단교파인 보고밀파를 믿던 남슬라브인과 알바니아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 급속히 이슬람으로 갈아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지배 민족인 [[튀르키예인|튀르크인]]은 본진 [[아나톨리아]]와 수도 [[이스탄불|코스탄티니예]] 근방인 그리스와 불가리아 일대에서 주로 살았지 유고슬라비아 일대까지 대거 이주하지는 않았고, 오스만 제국의 행정력은 튀르크인보다는 무슬림으로 개종한 남슬라브족을 통해서 투사되었다. 그리하여 오스만은 [[이이제이]]로 남슬라브족을 지배했고, 지배자 오스만에 민족적 반감은 이후 남슬라브족 이슬람교도들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스만 치하에서 기존에 있었던 정교회-가톨릭 갈등이 증폭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독교-이슬람교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제국 내 백성들을 각자 믿는 종교에 따라 공동체(Millet)을 형성하게 하고, 토착 종교를 기반으로 통치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애매한 구분만 존재했던 이 지역에 가톨릭 지역, 정교회 지역, 이슬람 지역 등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지역의 슬라브족은 대체로 정교회-가톨릭-이슬람의 신앙에 따라 민족도 갈려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인,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인, 이슬람을 믿는 보슈냐크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를 제외하면 언어나 혈통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